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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 죽일 놈의 사랑 - <후회하지 않아>, 이한

[인터뷰] 이 죽일 놈의 사랑 - <후회하지 않아>, 이한

입력시간 : 2006-11-15 16:19




ticketlink | 영화 개봉이 코 앞이다. 주변에서 동료들에게 인사 많이 듣겠다.
이한 |
 요즘에 드라마 촬영하느라고 주변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어서 별 이야기 못 들었다.(웃음) 농담이고 김정은 선배나 이서진 선배가 물어보더라. “너 ‘그런’ 영화 찍었다면서?”(웃음) VIP 시사회에 초대도 했었는데, 촬영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들 못 왔다.

 


소문은 들었지만, 섹스 신 강도가 무척 세더라. 특히 두 남자의 키스 신을 클로즈 업으로 보여주니까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좋은 반응이 있으면 나쁜 반응도 있는 게 당연하다. 충분히 불편해 할 수 있다. 특히 여자 관객들보다 남자 관객들이 조금 더 불편할 것 같다. 왜 여자들은 서로 팔짱도 끼고 같이 화장실도 가고 그러지만 남자들은 안 그런다. 감수성이 훨씬 풍부한 여자들이 더욱 더 공감할 수 있는 소재다. 저런 사람도 있겠구나 하고 쉽게 다가간다. 한국에서 남자 배우에게 군대 문제는 가장 보수적인 부분이라고 하는데 동성애는 더 하다.(웃음)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는 우려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반응이 많아서 다행이다.

 


처음 시나리오 받아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혹시 경악하지 않았나?(웃음)
잘 가는 어두컴컴한 카페에서 혼자 읽었다. 동성애 소재라는, 그런 것 말고도 사랑에 대한 멜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엄청나게 슬프게 읽었다.

 


그래도 직접 그 장면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겁이 났을 것도 같다.
시나리오 읽으면 어느 정도 그림이 상상이 된다. 이 장면은 이렇게 찍겠구나. 이 장면은 이렇게 표현이 되겠구나 등. 워낙 이송희일 감독님 대사가 문어체인데다가 함축적이기까지 하다. 평소에는 절대 안 쓰는 딱딱한 말투의 대사. 대사 처리가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다음은 베드 신 수위 조절 문제. 시나리오에서 보고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아마 적나라하게 표현하진 않겠지. 키스하려고 하면 다른 화면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베드 신은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그렇게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론은 적나라하게 다 보여주었다.(웃음) <후회하지 않아> 촬영 끝내고 멜로 연기에 대해 이해를 많이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후시 녹음 딸 때는 드라마 <굿바이 솔로>를 끝낸 후여서 이제 연기 레벨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나름 성숙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촬영할 때 너무 어려웠던 대사들을 다른 느낌으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대사가 어렵더라고. 아직 배울 게 너무 많다. 내 딴에는 이 부분에서는 관객들이 많이 웃겠구나 싶었던 거에선 조용하고, 심각하게 친 대사들에서는 웃기도 하고.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떤 대사가 그랬나?
예를 들어 ‘이게 내가 개발한 멘트야’ 같은 대사는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코믹하게 받아들여 질 줄 알았다. 그리고 ‘네 건 하나고, 내 것도 하나니까’ 같은 대사도 그렇고. 의외로 객석 분위기가 조용하더라.

 


처음에는 재민이 아니라 수민 역할을 원했다고 들었다.
원래 좋아하는 캐릭터가 올바르고 도시적인 전형적인 그런 것이 아닌, 거칠고 감성적인 이미지의 캐릭터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수민 역할이 능동적인 면과 수동적인 면을 다 가지고 있는 아주 재미있는 캐릭터더라고. 재민은 일반적인 캐릭터다. ‘동성애자’라는 걸 제외한다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람이고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도 기존에 내가 맡았던 역할과도 비슷하다. 워낙 쉬운 소재의 영화도 아닌데, 이런 영화라면 쉬운 캐릭터가 아닌, 좀 어려운 캐릭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감독님한테 저 수민이 하면 안되냐고 했더니, 감독님이 “됐거든” 딱 한 마디 했다.(웃음) 재민이가 수민이보다 키가 커야 하는데 내가 수민이 하면 재민이 역할을 할 배우가 없다는 거다.

 


영화 촬영하면서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나?
나는 동성애자라고 하면 일반 사람들하고 많이 다를 줄 알았다. 아무래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으니까. 감독님의 성향으로 판단해보건대, 동성애자는 여리고 섬세하고 겉모습은 멋지고 약간 거칠면서 스타일리쉬한 그런 사람들인 것 같다. 이야기하다 보니 완전히 감독님 칭찬하는 꼴이 되었네.(웃음) 감독님 흉을 한 가지 본다면 감독님이 아주 잘 토라진다. 마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하는 식으로, 내가 예뻐. 얘가 예뻐? 그런 질문도 하고 그랬다.(웃음)

 


같이 공연한 이영훈군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한다면? 이송희일 감독은 이영훈군이 평소에 너무 산만하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더라.
산만한 편이긴 한데 순간 몰입성은 탁월하다. 사실 산만한 건 나도 만만치 않아서. 슛 들어가기 전에 둘 다 산만하니까, 감독님이 "너네 왜 이렇게 정신 없니?"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었다. 영훈이는 워낙 순간 몰입성이 좋아서, 내가 어느 정도 흐트러지고 있어도 얘가 잡아주면 덩달아서 감정이 잡힌다. 사실 촬영할 때 애를 많이 먹었다. 슬픈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데 서로 얼굴 딱 쳐다보면 웃음 나오고. 요즘 영화 홍보나 포스터 촬영 때문에 예전보다 더 많이 만나는데 포스터 찍을 때 영훈이가 많이 어색해 하더라. 예전과는 180도 달라졌다. 요즘엔 내가 더 적극적이다.(웃음)

 


<후회하지 않아>는 게이 제작자와 게이 감독이 뭉쳐 만든 게이 영화라는, 선정성만이 부각되고 있다.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후회하지 않아>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더라. “야, 남자끼리 베드신도 있대. 나중에 꼭 보자.”라는 말을 얼핏 거리에서 들었으니까. 언론에서는 게이 영화, 게이 감독, 게이 제작자, 뭐 그딴 식으로 이야기되지만, 사실 <후회하지 않아>는 기본적으로 멜로 영화다. ‘게이’라는 그런 면에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그냥 멜로 영화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시사에서 영화 본 친구가 나에게 그러더라. 너 게이 아니냐고. 당황스럽기보다는 오히려 기뻤다. 그만큼 극 중에서 내가 연기를 잘 했다는 말일 테니까.(웃음)

 


문제의 섹스 신도 그렇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은 정말 힘들게 찍었을 것 같다.
섹스 신은 30분 동안 내부에서 찍은 거라 그다지 힘들진 않았는데, 마지막 장면 찍을 때는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영하 20도의 날씨에서 강풍기까지 틀어놓고 영화를 찍었으니. 추운데 바람까지 맞으니까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예전에 탐구생활 같은 데 보면 동물들이 겨울잠 자러 땅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래서 난 땅 속이 아주 따뜻한 줄 알았는데, 왠걸. 땅 속이 무슨 돌덩이 같더라.(웃음) 눈이 덮여 있는 흙은 좀 따뜻한데 아래 쪽 흙 온도는 상상을 초월하게 차갑더라고. 바람이 몸 위로 지나가는 게 아니라, 몸 밑으로 쑥 들어왔다 치고 나가는 그 느낌. 경험을 해보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을 거다.

 


필름이 아닌 6mm 디지털로 촬영한 탓에 어두운 톤에서는 배우들의 얼굴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워낙 저 예산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찍은 거라 어두운 톤은 정말 루즈하게 보일 수 있다.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성애 배우로써 동성애 영화 찍은 것을 뿌듯하게 생각한다. 만약 이송희일 감독이 또 다른 동성애 영화를 다른 느낌으로 찍자고 하면 찍을 생각 있다.(웃음)

 


굉장히 정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다들 나한테 집에서 막내냐고 물어보는 데 내가 장남이다.(웃음) 그 정도로 내가 잔정이 많고 사람들을 좋아한다.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카메라 앵글 안에선 차가워 보인다는 이야기 많이 듣는다.

 


본명이 김남길이라고 들었다. 굉장히 남성적이고 활달한 이름인데, 이한이라는 예명을 쓰게 된 이유는?
에이 촌스럽지. 뭐.(웃음) MBC 공채 붙었을 때 강남길 선배님이랑 이름이 겹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바꾸었다. 그런데 내 성격에는 김남길이라는 이름이 더 맞는다. 아무래도 사람이 자기 이름 따라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한이라는 이름으로 연기를 한 이후로는, 다 정적이다, 얌전하다, 고독하다 그런 소리만 듣는다. 하지만 연기 외적으로는 여전히 까불이 김남길로 살아간다.

 


연예계에는 어떻게 데뷔하게 되었나?
1998년도에 KBS 드라마 <학교 1>으로 데뷔했다. 1시즌에서 2시즌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아파치’라는 캐릭터로 나왔는데 워낙 베일에 쌓인 인물이라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고, 체계적으로 대학교 가서 연기 공부해야겠다 다짐했다. 그 후에 2001년에 연극 판에서 공연도 했다. 정극을 할 땐데, 연극하는 선배들 중에 방송사 공채 선배들이 몇 명 있었다. 매니지먼트나 상업적인 분야말고도 체계적인 연기 체험을 하고 싶으면 공채로 방송사에 들어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2003년인가에 처음으로 공중파 3사가 같은 기간에 공채를 했다. 다 넣었는데, 두 군데서는 떨어지고 운 좋게

TV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하고 있다. 이송희일 감독 식으로 질문을 하자면, 영화와 TV 드라마 중 어떤 게 더 좋은가?
TV 드라마와 영화 둘 다 하면서 그런 걸 느꼈다. 배우들이 이래서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그런 것. 지금까진 워낙 좋은 작가들을 만났었다. 그래서 일명 ‘쪽’대본 연기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TV는 아무래도 연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철저히 얼굴과 대상 위주인 바스트 샷만 나오니까.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TV에선 생각도 못하는 섬세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영화에선 일일이 체크하지 않나. 아, 이번 드라마 하면서 쪽 대본 경험 한 번 했다. 야외 촬영할 땐데 원래 대본이 없었다. 그런데 이 장소에 두 번 오긴 머니까 바로 현장에서 작가가 대본을 써주더라고. 그걸 바로 그 자리에서 보고 외워서 연기해야 하니까, 연기는커녕 그저 대사 외우기에만 급급했다. 다 찍고 나서 후회 엄청 했다. 이건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이 캐릭터는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후회하지 않아’가 아니라 ‘후회해도 소용없다’다.(웃음) 다시 찍을 수 없으니까.

 


영화는 즐겨 보는가?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가 있다면?
장르, 국적 안 가리고 다 보는 편이다. 굳이 꼽는다면 관객 입장에선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고, 배우 입장에선 폼 나는 액션이나 누아르 영화 좋아한다.(웃음)

 


액션이나 누아르를 좋아한다니 액션이 좀 되는 모양이다.(웃음)
개인적으로 워낙 복싱, 태권도 등 운동을 좋아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액션은 대역 안 쓰고 직접 다 한다. 물론 몸치도 있지만, 남자 배우들은 대개 다 운동 좋아하지 않나. 그런데 운동이랑 액션이랑 많이 다르더라. 그냥 액션 연기에 대해 열정이 있어서 다 하려고 하는 거지 잘 하지는 못한다.(웃음)

 


혹시 닮고 싶은 배우가 있는가?
차승원 선배를 제일 닮고 싶다. 연기면에서는 뭐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이런 내로라하는 선배들 많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롤 모델은 단연 차승원 선배다. 멀쩡하게 잘 생긴 분이 희극적인 연기도 진지한 연기도 잘 소화해 내고. 그런데 <국경의 남쪽> 끝내고 차승원 선배가 그랬다더라. 이제 한국 관객들이 자신에게 뭘 원하는 지 알았다고. 이미지적인 부분은 홍콩 배우 양조위. 내가 그 동안 워낙 어두운 이미지의 배역을 많이 맡아서인지 연기 색깔에 있어서 닉네임을 하다 갖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양조위 별명이 '새드 아이'다. 나도 이 정도면 슬픈 눈 아닌가?(웃음)

 


자, 이제 정리하자. <후회하지 않아>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하나?
감독님이랑 영훈이랑 우리도 천만 한번 넘겨봐? 그런 이야기를 장난으로 하긴 했지만 어차피 이 영화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지 않나. 아주 적은 분들이 봐도 좋으니까, 아 우리 나라 영화에도 이런 영화가 있구나. 이런 소재로도 영화를 찍을 수가 있구나 하는 그런 반응이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부터 10년 후, 이한은 어떤 배우가 되어 있을까?
배우로서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 아무래도 직접 경험하는 것을 바탕으로 연기하는 부분이 많을 텐데, 너무 경험한 게 없다 보니 묵직한 게 없고 가볍기만 하다. 스물 두 살 땐가, 연기 처음 시작할 때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5년 후면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그런데 지금 스물 일곱 살이 되었는데, 그때랑 지금이랑 별로 차이가 없다. 10년 후에도 비슷하면 어떡하지?(웃음) 나이가 드는 만큼 그 나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배우는 되고 싶다.